연인관계였던 두 남녀가
합의한 가운데 성관계를 촬영했습니다.
이 촬영물을 담은 동영상 파일을
남자가 외장 하드 디스크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몇 년 뒤, 이 동영상은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
이상야릇한 제목이 붙여져서 돌았습니다.
두 남녀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들이
본의 아니게 음란영화의 주인공이 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때는 두 남녀가 결별하고 각각 다른 사람과 만나 결혼한 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두 사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남자는 이 외장 하드를 분실했고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했습니다.
두 사람은 디지털 장의사를 고용해
수백만 원을 들여 발견하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지우면 또 다른 어딘가에서 동영상이 나타나고
또 나타납니다.
댓글난을 보니 이 동영상은 “고전”으로 통합니다.
“그만 좀 올려라” 이런 댓글이 즐비합니다.
지금의 배우자, 또 자식이 나중에라도
이 동영상을 본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몇 년 전 읽은 신문기사를 제가 복기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인지하고 동의하는 가운데서 촬영한 성행위 동영상도
두 사람 손을 떠났을 땐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을 일으키지요.
그런데
촬영됐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이른바 몰카에 의한 동영상이 세상 밖으로 나가
탁구공처럼 튀어 다닌다면.
이건 ‘멘붕’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누구의 소행일까. 파일을 가진 사람. 성관계를 맺은 상대편.
결별을 요구당한 쪽일 확률이 높습니다.
가장 가혹한 복수의 수단으로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죠.
유포되기를 바라지 않는, 자신의 성행위 동영상을 지워달라,
이런 신고가 한 해 몇 건이나 될까요?
2016년에만 8천 건 조금 못 됐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용기 있게 신고한 분들의 숫자입니다.
이보다 더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몰카 피해자는 98%가 여성입니다.
지난여름, 대학로와 광화문에 몰려나온
수만 명 여성의 몰카 반대 시위 기억하시죠?
이해 못할 구호도 있었지만
이들의 호소에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귀 기울여야 할 이유,
너무나 분명합니다.
피해자가 된 분들 팔 할은
극도의 대인 공포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하지요?
당사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비웃고 조롱할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그렇다면 이거 살인입니다.
사람의 숨을 끊어야만 살인이 아니지요.
인격 살인도 살인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도 그렇지만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 몰카 피해를 본다면 어떨까요?
오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공식 SNS에는
“한 여성 연예인이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 피해를 경험한 사실이 보도됐다”라며
“이 여성 연예인의 옛 남자친구가 벌인 데이트 폭력의 끝은
결국, 유포협박이라는 사이버 성폭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연예인 사생활 관련 보도로 특화된 어떤 인터넷 신문은
이 여성 연예인이 그간 옛 남자친구로부터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말이지요.
기사를 읽어보니,
이 여성 연예인은 동영상 유포를 막기 위해
그 옛 남자친구에게 무릎 꿇고 애원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극단적으로 추정하자면,
이 여성 연예인은 죽는 날까지
이 동영상으로 협박당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보다 앞선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 연예인은 옛 남자친구에 의해 폭행 가해자로 몰렸습니다.
옛 남자친구가, 나 맞았다, 그 여성 연예인에게,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여성 연예인, 초기에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과까지 한 모양이에요.
그 남자친구가 손에 쥐고 있는 동영상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 옛 남자친구 측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협박할 의도는 없었다. 그쪽이 먼저 찍자고 했다”라고
반박했다고 하네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이 여성 연예인에게
“더 죄송할 필요가 없습니다.
없는 잘못까지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경계가 없는 세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세상이지요.
이 여성 연예인 사건, 예의주시하겠습니다.
[용의 먹물] 2018. 10. 4(목)
KBS1라디오 '김용민 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