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의 맑은 칼럼

2011년 7월, 노르웨이 사람 하나가 다문화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며

외국인을 상대로 테러를 가했습니다.

77명을 집단 살해한 범인,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와 달리 한국은 단일문화를 가졌다. 가장 완전한 사회다.”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대한민국,

이 범죄자에 의해 의문의 1패를 당했습니다.

 

제노포비아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다른 국적, 다른 민족,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감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글로벌을 운운하는 시대에 구시대적인 텃세가 웬 말인가',

이렇게 가볍게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가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감정은

호의보다는 경계에 기울어 있습니다.

 

올 초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대거 들어왔을 때

혐오 정서가 한국사회에 만연했지요.

광화문에서 길 건너를 사이에 두고

입국 찬성, 입국 반대로 갈린 시위대가 서로 목청을 높였습니다.

때를 노린 듯 ‘난민이 들어오면 한국은 테러와

성폭행의 표적이 된다’와 같은 근거없는 가짜뉴스가 범람했습니다.

 

아, 그런데 외국인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같은 동포에게도 다르지 않은 태도였어요.

중국 동포가 모여 사는 구로구, 이곳을 상습 범죄 발생지역으로,

중국 교포를 조폭으로 묘사한 영화, 보신 기억 있으시죠?

따지고 보니 코리안 드림을 품고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우리보다 형편 어려운 이들을 상대로 한 무시와 혐오였어요.

우리가 언제부터 부자였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자, 냉정하게 따져보자고요.

그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우범자일까요?

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하는 ‘한국의 범죄 현상과 형사정책’ 자료 중에

2011년에서 2015년까지의 통계를 펴 봤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외국인의 검거인원수를 보니, 매년 내국인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해마다 다합쳐도 5만 명을 넘은 적이 없어요.

다만 매년 조금씩 증가하는 추이였는데요. 그래도 작년엔 도리어 줄었다고 합니다.

단언컨대 외국인에 대한 공포는 과장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경기도 고양 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

이 화재의 원인이 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붙잡혔습니다.

고의성이 없었음에도, 또 합법적 체류자임에도

그는 필요 이상의 냉정한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의 소행이라며 범죄자로 낙인 찍는 취지의 보도도 넘쳐났습니다.

경찰은 즉각 이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감까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풀려났습니다.

이같은 결정에는 뜻있는 시민들의 요구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말라”는 요구 말입니다.

 

머쓱해진 경찰 관계자는, “국가 기간 시설이 불에 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영장을 신청했다”고 상황 설명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국가 기간 시설이, 풍등 하나에 잿더미가 된 책임을

왜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묻는가,

어떤 경우에라도 막았어야 할 화재 아니었던가”라면서 날 세워 반박했습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무방비로 화재에 노출된 이 저유소의 운영 주체는

송유관 공삽니다. 이름만 들어보면 공기업 같은데.

여기는 십수 년 전 민영화가 됐습니다.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 혹시 이 민영화에 있었던 거 아닐까요?

 

물론 큰불을 내면 중실화 혐의로 체포 구금된 채 수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저유소가 있다는 사실은

스리랑카 노동자는 물론, 주변 주민들도 잘 몰랐다고 하네요.

풍등 날리기 행사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빈번하게 있었던 행사였고요.

 

외국인이 얽힌 사고가 나서 경위를 따질 때

혹여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히 그래야 합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났을 때 흉흉한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며 가짜뉴스를 퍼뜨렸지요?

그래서 학살과 테러를 당한 아픈 과거를 우리는 흉터처럼 품고 있습니다.

혐오 피해자가 혐오 가해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2003년 인간 게놈을 연구한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사람은 99.9% 이상 같은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단 0.1% 미만인 셈인데요.

이 0.1%미만에서 종족 그리고 외모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다시 이야기해 인종의 차이는 0.1% 미만에서 가려집니다.

그렇다면 0.1% 미만에 범죄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숨어있다?

이건 과학적으로 증거가 없습니다.

혐오해도 되는 근거를 가진 사람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의심은 또 사람에 대한 혐오는 최후까지 유보해야 합니다.

용의 먹물이었습니다. --

 

노래. 루시드폴 ‘사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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